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이라의 징벌 (문단 편집) === 가문 전쟁 === 이는 처음엔 그냥 국지적 충돌 따위로 간주됐지만 곧바로 격화돼서 나중에 가문 전쟁(The War of the Houses)이라고 부르는 큰 전쟁이 됐다. 바이어 가문은 순식간에 집정 의회의 압제에 대항하자며 아이리스의 귀족들을 포섭했다. 다른 자들은 기르실드가 가문을 완벽히 통제하며 하위 가문 역시 열렬히 따르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여지껏 기르실드 휘하에서 바이어 가문이 갈고 닦은 결과가 나타난 순간이었다. 거기다 5대 군사 가문은 이시라의 참극 이래로 자기네에 대항할 만한 세력이 있을 리가 없다고 자만에 빠져 있었다. 아무도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동안 기르실드 경은 군대를 이끌고 샤이르로 진군했다. 이미 이 도시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기르실드 경이 도시를 손쉽게 점거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게다가 미르미돈이 어마어마하게 몰려온 것 역시 예상 외였고, 지금도 이 많은 미르미돈을 언제 어디서 만들었는지는 미지수다. 아마도 쉴 가문에서 기르실드의 천재성에 감탄한 협력자가 있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기르실드 경은 선제 공격으로 수도 방위 가문인 실로우르 가문을 포위해 방비를 무력화 시키며 본인은 호위와 함께 집정 의회를 점령해 집정관들을 인질로 붙잡으면서 손쉽게 샤이르를 함락했다. 수도인 샤이르는 소수가 방어하기 딱 좋은 성채 도시였기에 수비 태세에 들어간 바이어 가문은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다. 기르실드는 집정관을 굴복시키기 위해 살려두면서 자신을 군주로 인정하라고 강요했으나 그들은 거부했다. 비록 실로우르 가문이 기습적으로 포위당해서 수도를 지키진 못했지만, 적은 손실만으로 오랫동안 버틴 덕에 바이어 가문의 전력을 분산시켜서 결과적으로 다른 대항할 자들이 모일 시간을 벌어줬다. 나이아르 가문의 여명수호단과 엘로우르 가문 등이 뭉치고 쉴 가문이 미르미돈을 지원해 줘서 수도 탈환을 위해 진군했다. 샤이르 남쪽에서 벌어진 큰 전투 이후 바이어 가문은 물러나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르실드 경은 전투가 시작되자 집정관들을 죄다 처형하려 했으나 실로우르 가문의 결사대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공격을 감행해 시선을 끌어준 덕에 집정관들을 안전히 구출할 수 있었다. 점점 적이 증원되자 바이어 가문의 장군들은 기르실드 경에게 퇴각할 때라고 설득했고, 결국 아이리스로 퇴각해 이년 여 가량을 버텼다. 그 동안 5대 군사 가문 중 2개 가문이나 이 전쟁에 불참했는데, 라이실리르 가문은 에스룬발과의 전쟁 당시의 타격이 아직도 남아있는데다 남방 관문인 안개의 문의 수비를 맡고 있던 가문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이센 가문은 왜 내전에 참여하지 않는지에 대한 납득이 가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센 가문이 바이어 가문과 결탁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기르실드는 자신의 봉기 목적이 오직 이오스를 통합하고 국민들을 구원하겠다는 것 뿐이라고 주장하며 버텼다. 그리고 그는 영혼 없이 태어나는 아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유로 2년 동안 몰래 수많은 아이들을 모아서 끔찍한 실험을 자행했고, 582AR 후반이 되어서야 쉴 가문이 처음으로 이 만행의 증거를 찾아냈다. 이로 인해 죽은 아이가 얼마나 되는지 확실히 알 순 없고, 솔직히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못해도 수천명이나 되는 아이가 학살당했음은 분명하다. 가문 동맹군은 처음에는 사이라의 성지를 함부로 부수고 싶지는 않았기에 공격을 주저했으나, 쉴 가문의 폭로 이후 이런 짓거리를 막고자 바로 한 달만인 다음 해 초부터 총 공격을 감행했다. 일단 우려 때문에 조심한 결과 공세를 유지하면서도 사이라 신전과 다른 성지를 보존할 순 있었다. 비주류 취급 받던 사이라의 징벌은 이 전쟁이 끝나갈 때에나 참전했다. 애초에 외면받던 자들인데다 잘 싸우는 자들은 죄다 인간들이 사는 곳에 퍼졌으니 별 수 없었지만. 사실 기르실드 경이 주창한 대의가 사이라의 징벌과 비슷한 점도 있었기에 사이라의 징벌 지도부 측에선 혹시 일부 대원이 기르실드 경 쪽에 잘못 빠지지 않는가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리스의 마지막 공격 전에 나이아르와 쉴 가문은 이전까진 무시당하던 사이라의 징벌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사이라의 징벌은 이를 바로 수락해 당장 모을 수 있는 병력을 죄다 그러모아서 공격에 동참했다.[* 사이라의 징벌 포스북의 역사를 소개하는 서술자 본인도, 비록 바이어 가문 소속이었지만 진압군을 도와서 마법사 사냥꾼이 결계를 뚫고 지나가는 것 등을 도왔다 한다.] 몇달 간 아이리스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지속됐지만 서서히 이기고는 있어도 바이어 가문이 질기게 버티면서 희생자는 늘어만 갔고, 이에 참다 못한 동맹군은 더 큰 희생을 감당하지 못한다 판단하고는 비밀 병기를 동원할 것을 요구했다. >... 숙련 마술사 란이 적병들이 박혀있던 곳에 하이페리온의 성광포를 연사해 교전 시간을 단축했어. 사격 후에는 아무리 끔찍한 광경이 벌어져도 누군가는 결과를 확인해야만 했지. 거기 있던 바이어 병력은 현실에서 지워졌어. 성광포가 터진 곳에 옅은 연기가 나는 큰 구멍이 나 있을 뿐이었지. 옆에 있던 건물 몇몇은 소멸하거나, 벽이 현실에서 잘려나간 것 처럼 사라졌어. 생존자를 찾을 필요조차 없겠더구나. >우리는 우리가 만든 가장 강한, 한없는 힘이자 끝없는 죽음의 화신을 풀어놨어. 하이페리온의 첫 목표가 우리 동족이라는 건 우리가 다루는 무기가 벌인 끔찍한 짓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역겹고 말야. 난 내 지위에서 물러났고 한달 내로 집으로 돌아가. 그 뒤에 뭘 할진 모르겠구나. >사랑하는 형제 나이길이. >-한 공성전 참전자의 편지에서 발췌. 결국 에스룬발 같은 용과 대항하기 위해 쉴 가문이 만들었다 주포인 성광포(Starburst Cannon)에 맞은 지역에 있는 것을 '''말 그대로 [[지우개#s-2|지워버리는]]''' 너무나도 끔찍한 위력을 자랑해서 봉인해 뒀던 [[결전병기]] 하이페리온 몇 대가 제작자의 동족을 상대로 첫 실전을 치뤘고, 비록 하이페리온이 [[거신#s-2|수많은 고대 건물을 '''삭제'''하고 수많은 시민을 공격의 여파로 없애버리긴 했어도]], 콜로설의 참전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은 빨리 끝났다. 바이어 가문을 제압한 뒤로 기르실드 경을 수색 중이던 여명의 군주 바이로스 나이아르가 기르실드에게 큰 상처를 입혔지만 숨통을 끊기 전에 호위병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확인사살|끝장내는 건]] 실패하고 기르실드는 도망쳐 버린다. 기르실드가 도망친데다 아마도 상처 때문에 죽었을 것이 뻔했기에 바이어 가문 병사는 모두 항복하고 전쟁이 끝난다. 기르실드의 악행에 동참하던 핵심 인물은 모두 처형당했고, 상당수의 바이어 가문 사람들은 죄책감 때문에 탐구자나 사이라 교단, 또는 사이라의 징벌 쪽으로 들어갔다. 저지른 게 너무 심하다 보니까 아예 가문 자체를 해체해 버리자는 이야기까지 나올 지경이었고, 비록 저지른 악행이 극악하다고는 해도 바이어 가문이 그 전에 천년 넘게 기여한 공도 헤아려 달라는 간절한 호소 덕에 그나마 가문이 존속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기르실드의 이야기가 끝난 건 아니었다. 타락한 나이로의 사제의 자료를 배워서인지 그 역시 엘드리치라는 괴물이 되는 비법을 터득했고, 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런 괴물이 되는 것 자체를 원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고어셰이드|엘드리치가 되어 크릭스로 도망쳤다.]] 사실 몇년 뒤 토루크 휘하에 어떤 엘드리치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긴 했지만 엘프들 입장에선 이제 저 자가 우리 일에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적어도 그때까지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